2015년 10월 19일 월요일

엘레나 퀘스트 ~ 이주 처녀 모험 RPG ~ 체험판



오랜만에 남기는 감상으로 엘레나 퀘스트(체험판)가 당첨.

쯔꾸르 게임이란 게 대부분 아마추어가 모여서 만든 게임이다 보니
소수의 뛰어난 작품들을 제외하곤 비슷한 사운드, 비슷한 메뉴창, 비슷한 전투로
분명 처음하는 게임인데도 따분함을 초고속으로 느끼는 불상사가 종종 생긴다.

쯔꾸르라는 동일한 툴을 쓰면서 생기는 단점이랄까.
그래서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제작자들은 스크립트를 활용해서 최대한 다르게
보이려고 신경써서 어떻게든 익숙함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오죽하면 쯔꾸르 기본 에셋과 얼마나 다른지에 따라 게임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수 있는 지표로 참고할 수 있을 정도니.

그런 면에서 엘레나 퀘스트는 무려 1년 3개월이란 개발 기간 끝에 나온 만큼
제작자가 스크립트를 어마무시하게 쓴 게임, 떼깔부터 다른 게임 되시겠다.


게임의 오프닝은 웬 수상한 녀석들이 지하에 수십 년씩이나 감금되어 있다가
마침내 탈출하여 한 마을의 촌장과 경비들을 살해한 뒤, 거기의 촌장이 되어 마을을 지배.
신성한 의무라고 하여 강압적으로 마을 주민들을 착취하는, 빅브라더 부럽지 않은 마을에서
시작한다.

처음 애네들 봤을 때 무슨 암굴왕처럼 복수!복수!복수!할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지상으로 나오니까 하는 짓이 촌장 노릇이나 하고 있으니 소박한 건지..
아니면 현실적인 건지.. 게다가 말이 촌장이지, 영락없는 고리대금업자다.


주인공인 엘레나는 성년이 되어 신성한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입장.
어떻게든 부모님의 노동 부담을 덜어들이고자 겁도 없이 촌장과 거래를 시도하게 되고
그 결과 오십만 골드를 90일 안에 촌장한테 갖다 받쳐야하는 빚쟁이 신세가 되고 만다.

특이한 점으로 주인공 피부 색상을 선택할 수 있다.(갈색, 흰색)
한 번 선택한 뒤에도 게임 내 아이템으로 피부 색상을 다시 바꿀 수 있다.
이건 아마 제작자의 취향이 반영된 것일까..?


그리하여 90일 내에 50만 골드를 벌어오는 게 게임의 목적이다.
보통 일반적인 rpg가 '용사여, 마왕을 물리쳐라'라면 일단 동료도 모아야 하고,
4대 천왕을 때려잡든, 다른 마을로 가서 봉인의 무구를 찾든 이것저것 해야할 것이 많은데
할 거리가 많다는 것은 단점으로 뭘 해야할지 막막함을 느끼기가 쉬운데(사쿠라코 퀘스트)
'90일 내에 50만 골드 벌어오기'는 한 눈에 봐도 게임의 목적이 간단명료하여
게임을 헤멜 걱정이 없다는 점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



이 게임에는 아침, 오후, 저녁, 심야 4단계의 시간 변화가 있는데 으레 이런 게임들의
시간 변화란 으쌰으쌰 이벤트를 위한 것이 전부이나 여기에선 정말로 시간이 흘러가므로
90일이라는 정해진 기한 동안 시간을 잘 활용하여 돈을 모아야 한다.
게임의 목적에 맞게 시간 변화라는 게임의 시스템을 잘 버무린 케이스.


다음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게임 내 '과정'에 대한 묘사가 충실하다는 점이다.
초반부터 필드에 나가서 몹을 잡으려고 하면 캐릭터가 벅차다면서 도망친다.
주인공은 평범한 마을에서 자란 평범한 주인공이라서 그렇단다.
그래서 바운티 센터에 가서 현상 수배 벽지를 2번 봐야 수련 이벤트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싸울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감탄했던 건 단순 이벤트 처리에서 그치지 않고 수련 중에 게임 내 시간이 14일이
흐른다는 것! 그 뿐만 아니라 메이드 까페에 가서 알바를 하고 싶다고 하면 알바복을
따로 사야 된다고 한다. 주인공은 당연히 땡전 한 푼 없는 상황. 그러자 웬 부잣집 주인이
대신 돈을 내준다. (이렇게 되면 주인공이 메이드 까페에서 부잣집 주인이 뭔 짓을 해도
엘레나가 쉽게 거부하지 못하는 당위성이 생김)


게다가 저기서 끝나지 않고 메이드 까페 알바를 하기 위해서 NPC가 하라는 대로
이것저것 조건을 만족시키러 뛰어다니다보면 자연스레 마을의 가게들은 한 번씩 다
들러보게 된다. 따로 튜토리얼을 만들지 않고 게임 내에 튜토리얼을 자연스럽게 녹인 부분.
그렇게 소소하게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자연스레 굵직한 퀘스트로 넘어가게 된다.

이처럼 퀘스트를 풀어가는 과정을 충실하게 묘사한 걸 보면 RPG의 근본적인 재미인
상호작용이란 요소를 제작자가 상당히 공들여서 만들어놨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주인공을 노예처럼 막 부려먹는 RPG의 전통을 충실히 재현)


대단한 건 이런 과정에 대한 묘사가 H이벤트까지 연결된다.
가령 초반 어린아이가 아이스께끼하는 이벤트 → 주인공이 비명을 지르자 소리를 듣고
아이의 아빠가 찾아옴 → 알고 보니 아빠는 여관 주인 → 여관이 한참 바쁠 땐 아이를
신경쓰질 못한다고 → 주인공보고 애 돌보는 알바를 부탁 → 그 후 18~22시에 여관을 가면
애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알바가 생김 → 애를 씻어주기 위해 목욕탕을 가는데
애랑 같이 들어가기 위해서 혼욕탕을 가게 됨. → ㅋ?


다른 19금 쯔꾸르 게임 같으면 다 따로 놀았을 이벤트들이 이 게임에선
아이스께끼 → 혼욕 → ㅋ? → ㅋㅋ? 까지 이어지는 H 이벤트의 연속성을 맛볼 수 있다.
19금의 맛과 RPG의 상호작용을 섞어 그야말로 19금 RPG의 참맛이 아닐 수 없다.


 90일이라는 기한 동안 어떻게든 50만 골드를 모아야한다는 게임의 목적에 맞게 짜여진
게임 시스템과 단발성 이벤트에 끝나지 않고 사건과 사건이 이어지는 구조. 체험판만으로도
게임이 '나 1년 3개월의 시간을 그냥 허투루 쓴 게 아님.'하고 당당히 말하는 듯한 완성도까지.


그 외에 체험판에는 알 수 없었던 임신도와 악(惡)도와 같은 패러미터들, 게임 내 곳곳에
뿌려져 있던 떡밥(촌장의 정체, 주인공이 마을 떠나기 전에 부모님한테 받은 옷, 주인공의
수련을 도와준 스승의 정체, 저택 주인이 주인공을 도운 까닭 등) 이것이 맥거핀이 될지,
아니면 제대로 회수를 하여 복선이 될지는 본편의 뚜껑을 까봐야 알겠지만
체험판 자체로만 판단한다면 당장 본편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정통파 RPG였다.

체험판 평점 : ★☆


참고사항
-H효과음이 없다.
-주인공이 빗치 속성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민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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